SIHONG_critique




2012 부산 개인전

‘해변의 노래’ -바람을 잡는 손

 그 동안의 작업 ‘마음의 벽’을 내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심층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벽을 선택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벽이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단절과 거절과 고립.. 등 부정적인 것이 많다. 하지만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벽은 그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벽은 긍정과 부정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벽 속에는 따스한 봄 햇살과 여름의 폭풍우와 진홍색 담쟁이 넝쿨의 가을과 길고 시린 겨울 등의 여러 기억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누구든지 한번쯤은 벽 위에 드리워졌던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외로움에 잠겨 보았을 것이고, 벽 너머로 희망의 무지개를 쳐다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바로 벽 위에 새겨진 그런 삶의 흔적들을 담담하게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메타복스 그룹 활동을 하던 당시 나는 탈 모던이라는 거대담론의 기반 위에 작품 활동을 하였다. 민족의 애한과 고통, 극복이라는 명제를 내 작품의 주제로 담고 싶었다. 그 당시 그렇게 보낸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딘가 허전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상처받은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이나 구호에 있지 않고,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과 같은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한 따뜻한 마음이 벽 안에 가득히 투영되길 소망한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벽 뒤에 웅크려 앉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벽 위를 스치고 지나간 흔적들을 관찰하고 느끼며, 그것들의 의미를 되새기고, 포용해야 할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마음의 벽’ 시리즈를 잠시 뒤로 하고, 햇살 가득한 해변으로 나와 그 가시적인 의미에 귀를 기울이며 작품을 준비하였다. 무엇보다 자유와 무한과 영원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해변의 풍경’에는 충만하였다. 해변가의 소리와 풍경은 잠시 어른거리다가 사라지는 순간의 것들이 분명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체의 세월을 넘어서는 동일성을 지니게 된다. 구석기인들은 해변에서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먹고 난 뒤 패총을 쌓아 올렸다. 아주 먼 훗날 해변을 거닐 사람은 그러한 구석기인들의 개인적인 관심사나 가치관과는 결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밀려드는 파도로부터 받았던 무한의 느낌은 시대를 넘어 앞으로도 동일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관심사나 가치관의 차이는 그러한 무한 앞에 작은 파도의 거품과도 같은 것이다.

  ‘해변의 풍경’은 분명 개체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탈색시키면서 개인성을 넘어서게 만든다. 거대 담론들도 무한 앞에서는 매우 사소한 속삭임일 뿐이다. 해변의 풍경들은 원만한 소통을 꿈꾸게 만든다. 무한의 느낌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가고, 그것은 개체성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체험되는 본질적인 소통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유다.

 무한의 세월 속으로 바람이 불고, 파도는 해변을 촉촉이 적신다. 그것에 몸을 맡기면 마음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응어린 진 상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손을 내밀어 해변을 스쳐 부는 바람 한 조각을 잡아본다.


2012년 6월, 춘산정에서 S I H O N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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