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ONG_critique

 




홍승일의 斷面 / 김용범 (시인 .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홍승일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한국미술의 최전선전에서이다. 당시 나는 우연치 않게 메타복스 멤버들의 신선한 음모에 휩쓸려 구정 전후에 그들의 도록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만난 홍승일의 작품은 本質의 구조였다.

 그는 생경한 나무토막, 제재소에서 반듯하게 켜낸 나무토막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리하여 시간의 흔적들이 겹겹이 적층 되어 있는 시간의 흔적들을 구해 하나의 사물들을 구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사물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마치 낡은 목조 건물의 벽면과도 같은 그을음 속에서 그의 담론을 엿듣는 그런 메시지 그것이 홍승일이었다. 몇 번의 그룹전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결이 드러난 나무처럼 침묵하고 있는 결속의 시간을 보여주었다. 그 무렵쯤 나는 홍승일의 작품을 보며 다음과 같은 시 한편을 얻었다.

 허공으로 한 줄쯤으로 걸린 어느 시골의 빨래줄을 생각했다. 그것은 오래전의 추억이었다. 어머님은 이사하실 때마다 제일 먼저 전화선으로 만든 빨래줄부터 걷으셨다. 맑게 헹구어져 陽光이 부드러운 날 앞 마당에 널려 있던 깨끗한 속옷처럼.

 우리가 왜 그리 둔탁한 나무 조형을 보며 흰 빨래를 떠올리는 것인가. 불에 그을린 나무 결마다에서 손이 튼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버려진 나무토막을 짜맞추는 그의 무모한 노력 속에 어느 손때 묻은 옛날 장롱의 박쥐장식 하나가 기억 속에서 떠올라 최초의 백동 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그러다가 90년대로 들어오며 아주 낯선 소재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낯설다는 의미는 수용자인 우리들의 개념이다. 낯익은 그의 작업이 지니는 변화, 사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세계에 그 동안 익숙해진 까닭이리라. 그가 우리들의 시야에 펼쳐 보인 세계는 판넬이란 것이었다. 건축 현장에서 옮겨진 그의 판넬은 그 이전 작품들과 달리 보는 사람들에게 단절과 은폐란 컨셉을 느끼게 했다. 물론 작가의 작의와 보는 사람의 의미가 다 같을 수는 없지만 그는 갇혀 있음이란 개념속으로 우리를 몰고 갔다. 그가 보여준 이같은 표현의 구석구석에는 정치(精緻)하게 숨겨진 칼끝 같은 작의가 숨어 있는 듯했다.

 물론 그에게 그 의도를 물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였다. 다만 이런 생각은 내가 그의 작품을 읽는 나만의 독법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남에게 하는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 음흉하기까지 한 그의 성격과 눌변, 그의 작품은 이런 묵묵함 속에서 옹골차게 여문 결과물들이 었는지 모른다.

 반네루 우리가 건축 현장에서 쓰는 용어로 그의 오브제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다 정겹다. 그는 그것으로 펼치거나 깔거나 감옥같은 닫힌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더러 양철로 덧대어 있는 부분이 의도적으로 강조되게 배치하곤 한다.

 그의 작업은 이런 점에서 선이 굵다. 말하자면 조밀하게 보여주는 집중의 세계가 아니라 펼쳐 보여주는 열린 세계의 지향이 그의 작품에서 읽히는 느낌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낯선 감상자에 불과하다. 미술평론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단지 관람자일 뿐인 입장, 어쩌면 그것이 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내 생각과 나의 미적 경험으로 내식 독법으로 홍승일을 읽어 온 것이다.

이제 그가 준비하는 또하나의 신선한 음모에 동참하여 전시장에 펼쳐보일 그의 세계를 기대해 본다.

Copyright 1999-  Zeroboard
 
Copyright ⓒ 2012. SIHO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