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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의 작품세계 <초극의 형상화>/ 함세진(미술평론가)

  최근 홍승일은 약간의 상징성을 가미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심층정서를 별다른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표출시키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심층정서와 괴리를 이루는 표면적인 현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안개처럼 본질의 실상을 가리우는 인습적인 행위나 일상의 모습들은 심층정서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기만과 허구의 집적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세계와 자신의 실상에 접근해 들어가기 위해서 표면적인 현상에 현혹되기 보다는 기만의 휘장이 벗겨진 심층정서의 심연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속으로 침잠해 들어갈수록 세계와 분리되어 고립의 길로 가게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공감대를 통하여 세계와 합일의 길로 가게 된다. 그 길은 붓다, 노자, 장자, 달마등의 동양사상가들이 열어보인 길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계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과 합일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기만과 허구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본성을 봄으로써 비로소 세계와 자신을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각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각성은 거대한 우주의 운행속에서 찰나적인 순간으로 이루어진 환상의 삶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부조리와 고뇌에서 어쩌면 진정한 자유와 초극을 이루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것의 토대가 되는 현실적인 제도와 규범이 과연 근원적으로 머물수 있는 공간은 어느곳일까? 그것이 생성되고 현실화되고, 귀착되는 곳은 인간의 찰나적인 마음속이며, 따라서 그러한 마음속에서 각성으로 인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외면화 될 때 진정한 현실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모호한 담론의 형성이나, 어지러운 개념의 나열이나, 구호의 제창이나, 물리력의 동원등의 표면적인 노력으로 인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이미 그것은 해결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표면적인 구호와는 다르게 움직여 가고 있는 인간의 심층정서며, 따라서 홍승일은 그러한 모순과 대립의 진원지가 되는 자신의 내면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그것의 실상을 바로 보고, 그것의 진정한 초극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홍승일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것은 초극의 형상화였다. 그는 초기 작품에서 근, 현대사의 질곡속에서 우리 민족이 체험할 수 밖에 없었던 恨을 초극하려는 표현을 시도했었다. 그는 恨을 좌절된 정서가 아니라 그것의 실현을 꿈꾸며 승화를 지향하는 기다림과 소망의 정서라고 정의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작품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근,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수난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가족사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그는 마치 역사의 질곡 속으로 사라지고 잊혀져간 숱한 삶의 모습들처럼 여기 저기 시들한 모습으로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주어모아, 그것에 생명력을 불러 일으키고, 도시의 공터에 용도 폐기되어 버려진 베니아 판들을 조합하여 생명의지와 恨의 초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사실상 무력감과 좌절감의 그늘속으로 함몰되지 않기 위한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초극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초기 작품과 그것의 심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거치면서, 1993년 경부터 자신의 심층정서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그곳에서 채집된 것들을 표출시키고자 하는 최근의 작품세계를 열어가게 된 것이다. 그가 심연에서 채집하여 햇빛 속으로 가져나오는 것들은 아직은 어둡다. 작품의 전개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며, 그것들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더욱 정진하여 초극을 지향하는 그의 작품세계가 대립을 넘어선 화합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초월적인 헌신을 손짓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어느날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며 무심한 구름같은 마음으로 이 꿈같은 삶에서 한번 즐겁게 웃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1994년 6월 3회 개인전 (갤러리 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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