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ONG_critique

 




홍승일의 近作에 대하여 / 서성록 (미술평론가)

  많은 작가가 있지만 그래도 필자가 그간 눈독을 들여가며 관심있게 작품의 면모나 변천을 주시해온 작가중 한명이 홍승일이다. 그에게 그렇다고 어떤 환심을 가질 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는 묵묵하고 우직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이외에는 그다지 심혈을 쏟지 않아왔고 바로 이점이 필자의 마음을 언제나 사로잡아 왔던 것같다. 어찌보면 작품제작 외의 다른 방면에는 무능력한 천성을 타고 났는지 모르겠지만,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그는 그만의 독특한 조형적 재간을 불어넣으면서 철저한 작업세계의 구현을 위한 정지작업을 꽤해온 성실한 작가로 비춰진다.

  그의 초기작품은 지금과 같은 설치작업이었다. 나뭇가지에 채색을 가하고 널판을 대어 추상의 변주를 시도하고 또 거기에 볼품없는 마포 따위의 재료를 늘어뜨리면서 작가는 한때 물질이 가지는 본래성에 인위적인(기계적이 아닌 ) 성격을 부분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요즘들어 형태의 복잡함과 산만성을 누그러뜨리는 대신에 정열되고 다소는 틀잡힌 형태감을 취하고 재료면에서도 시각의 집중력을 살리는 단일한 물질(나무)를 택하여 그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불어넣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떤 물질이든 그의 작품구성에 조건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순식간 중량감을 지니고 전체의 조형형식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물로 탈바꿈한다. 보잘것 없는 철판 하나라도 그는 거기에 최면을 걸듯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강한 분해력의 소유자다.

  근래에 제작한 작품에 있어서의 공통점은 젊은작가 답지않게 어떤 완숙한 회화성을 동반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점은 그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단점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물질의 구성이나 짜임관계에 대한 밀도감에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 설정한 형식적 틀에 구속되어 그로부터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는 결과를 자초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고, 장점으로 작용할 수있다는 것은 허술한 회화성(다소 애매한 표현이긴 하지만)을 용인하지 않음으로써 예술적 탁월성을 자연스럽게 입증하는 이유에서이다. 하기는 빈틈없음의 작업내용이 흠으로 지적될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본다.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조형논리의 차분한 전개와 만족할 만한 보는 사람들의 시각적 충족감은 따지고 보면 작가의 면밀한 대상파악과 또 그 대상을 자기화시키는 조형능력에서 빚어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묵직한 나무를 사용하고 있는 탓인지 무엇보다도 형식의 중량감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중량감위에 작가는 톡쏘는 듯한 표현(베어낸 찌를 듯한 예각의 나무처리, 색깔의 원색적 구사)을 얹힘으로써 한층 모양새의 재미를 더해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현상의 기법보다는 작품속에 깊이 내재된 자연물의 조형화 작업을 통한 자기적 삶의 발견이며 추적이라는 주제의식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치 해변가에서 조가비를 줍듯 도시의 변두리와 공사장에서 나무조각을 주워모은다. 세월과 풍사의 때가 덕지덕지 붙은 그나무조각들은 내게 알 수 없는 친근감을 준다. 하루종일 주워모은 나무조각들을 작업실에 벌여놓고 그것들과 씨름하기 시작한다.(중략) 나무는 결국 내 일부가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서 있게 된다. 분만을 끝내고난 산모처럼 조그만 희열을 느끼며 변모된 나무를 바라보게 되는데 나무에 새로운 생명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나무에의해 내 시들한 내면에 생명감이 일깨워졌다는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작가 노트중에서) 이상의 글은 작가의 작업내용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어 분명하게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를 파악하게 해준다. 작가는 나무(객체) 보다는 자신(주체)의 발견에 우선을 두며 그러므로 나무에 채색을 하고 그것을 재구성하여 조형으로 형성하는 일체의 작업과정은 전적으로 주체의 영역 가운데 일어나는 이벤트에 다름아니다. 말하자면 물질체험이나 표현확대와 같은 요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생활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계기로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개인적이며 사소한 발견은 단지 지엽적인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생활과 긴밀한 관계에 놓인 문제항에 대한 검토인 동시에 도시문명이 부여하는 또하나의 의미, 즉 폐허화되고 불구화된 물질문명이 가져다주는 어떤 역사적 사실의 신화성에 대한 표현으로 확산되어진다. 다시말해 인간의 끝없는 야심과 과잉생산으로 야기된 문명폐기의 단편단편들을 재생된 인공품(작품)으로 다시금 보여줌으로써 현재적 위치에서 물질과 관계맺고 있는 인간의 대상세계에 대한 지배욕구의 탐욕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어느모로 보나 잘짜여진 형성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신념체계속에 가로놓인 대상지배의 욕구를 “반성적으로” 관찰하는 날카로운 섬광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스쳐지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작품은 “잘짜여진 형성물”처럼 보이긴 하지만(허황된 현실에 대한 정당화를 꾸준히 조장하는) “잘짜여진 이성의 지배체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뛰어 넘으려는 강한 집념을(생산적 의미가 박탈된 물질의 구성이라는 스크린을 거쳐 우리에게 주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1989년 2회 개인전 (수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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