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ONG_critique

 




홍승일의 <회화적 오브제>에 대하여 / 이일(미술 평론가)

  알렉산더 칼더는 언젠가 자신의 모빌 작품을 두고 “공중에 그려진 드로잉”이라고 한 적이 있다. 땅 위에 세워졌거나 또는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나무처럼 가지를 친 가는 철사와 그 끝에 매어달린 엷은 철판 잎들이 바람 따라 흔들릴 때마다, 그 철사가 절며한 선묘(線描)를 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묘는 정착(定着)을 모른다.

  홍승일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면서 서두부터 컬더의 “모빌”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어쩌면 앞뒤가 않맞는 것같기도 하다. 홍승일의 작품은 엄연히 고착되어 있는 것일 뿐더러, 컬더의 “모빌”처럼 세련된 율동을(비록 잠재된 것이라 할지언정) 간직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의미에선 조잡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컬더의 “모빌”은 엄연히 조각작품이며 홍승일의 그것은 조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 사이에는 표현의 방법론상에 있어 분명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각기의 작품이 조각이든 아니든, 다같이 “회화적 표현”에 의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컬더가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그의 철사와 원색의 철판 잎은 조소적이라기보다 회화적이요, 홍승일의 “아상블라쥬”(Assemblage)는 이러저러한 사물의 집합체 (集合体)이자 전체로서는 강한 회화성을 지닌 작품이다. 굳이 말하자면 홍승일의 아상블라쥬작품은 일종의 “회화적 오브제”이다.

  이 회화적 오브제란 용어는 언뜻 듣기에 반어적(反語的)이다. (하기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 의하면 현대미술의 기본적인 특징의 하나가 바로 이 “반어적”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구조상으로 볼 때 홍승일의 작품은 이를테면 라우센버그의 이른바 “콤바인 페인팅”보다 훨씬 더 동질적인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콤바인 페인팅이 회화와 오브제라는 이질적인 요소의 단순한 결합이라고 한다면 홍승일의 “회화적 오브제”는 오브제 그 자체가 회화적 표현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홍승일의 작품의 회화성은 매우 강렬한 표현성을 지니고 있다. 허술한 나무판, 나뭇가지, 철사 또는 천조각 등에 강렬한 채색이 베풀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한 작품 속에 통합된 사물을 각기가 다같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어떤 변신(變身)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신, 그것은 곧 그 어떤 표현적인 세계에로의 변신이며 그 어떤 표현적인 세계는 우리 조상의 소박한 물신숭배(物神崇拜-페티시즘)의 그것, 샤머니즘의 세계요 푸닥거리의 세계이다.

  홍승일의 작품에서 샤머니즘적인 물신숭배의 메이리를 찾아 본다는 것이 어쩌면 일종의 감상적인 회고(懷古) 취향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테면 옛날, 성황당을 지나갈 때 보았던 나뭇가지에 걸린 울긋불긋한 천나부라기들에 대한 옛 추억을 되새겨 보는 ... 그러나 그것은 어찌했든 간에 한가지 분명한 것은, 홍승일에게 있어 오브제는 이미 자기규정적(自己規定的)인 개념의 포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표현적인  실체(實體)로서의 자신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리하여 세계 존재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작품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홍승일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 1985년에 있은 제1회 META-VOX그룹전에 참가한 이래 그와 같은 작업을 꾸준히 추구해 오고 있는 드문 화가의 한 사람으로 보인다.

1987년1회 개인전 (관훈미술관)

Copyright 1999-  Zeroboard
 
Copyright ⓒ 2012. SIHO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