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ONG_critique

 




죽은 갯벌과 황폐한 영혼 / 조광석(미술평론가, 조형예술학 박사)

 미술작품들에 관한 많은 이론적 논의들은 비평가들의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작가들 작품 안에서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들은 작품 내에서 스스로의 구조인 표상과 의미에 관한 논의와의 관련을 찾고 있으며, 주지하듯이 이런 논의를 반영하는 미술에 대해 대부분 모더니스트라는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미술 작품에서 표상 행위 자체에 대한 집착은 작품 상에서 의미의 제거와 상징의 해체라는 극단적 단계를 밟게 된다. 그들은 작품의 초기부터 미술 작픔의 실제와 재현에서의 허구성과 불균형을 지적하며, 인공물로서 작품 자체는 사회적 위상과 자질만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과적으로 작품 자체는 현실을 인식하려는 초월적 자아로서의 실체성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현시적으로 드러난 작품의 특성은 자의식적인 특성을 보여주게 되고, 작품이라는 개념은 미술 역사의 산물로서의 미술을 결코 벗어나지 못함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홍승일의 작품 세계는 그런 세대와 직접 관련을 갖고 있는데, 선배들이 보여준 회화적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발생된다. 그것은 반발적 테제로서 그의 작품 안에서 자아의 반영과 가상 세계와의 동일성이라는 낭만주의적 특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세대가 안고 있는 어려운 점의 하나로서, 前時期에 보여준 현상에 대한 극복과 낭만적 자유의 회복이라는 모순적 담론의 교체와 현대 예술의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작품 개체의 正體性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홍승일은 80년대에 메타복스에 참여하면서 이런 논의를 작품 안에 반영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홍승일은 그들과 다른 요소를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강한 상징성이라 하겠다. 홍승일의 대부분 작품은 현실과 관계에서 반모방적인 현실에 기초를 두면서 작품을 신비로운 인공물처럼 제시한다. 그의 작품의 내용은 非事實的이며, 그의 시적(詩的)예술관을 반영하면서 자율적인 미술과 분리된다. 시적 의미라 해서 통합적인 허구와 잡다하고 불완전하게 보이는 불확실한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하여, 신비함은 표현성들과 함께 수수께끼와 같은 동시대와 장소의 증인으로서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홍승일의 작품은 소재의 선택, 전개방법, 그것들을 통해서 제시하는 의미들의 형식에서 스스로의 正體性을 찾아가고 있다.

 홍승일의 작품은 선택된 재료들을 구성함에 있어서 아쌍블라즈(assamblage)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는 오브제들을 선택하고, 그것을 구성할 수 있는 작업이 작가에게 주어지는 특권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 작품에 쓰여지는 오브제들의 적용 방법은 회화에서의 물감들처럼 이미지들을 구성하는 요소로 차용한다. 일반적인 다른 작품에서는 파편적인 오브제들이 현실의 단편으로서의 재현적 의도와 연장 선상에 있지만, 이러한 홍승일의 오브제는 선택된 오브제의 이미지들을 재구성함으로서 나무 조각들을 본래의 성격과 전혀 다른 구조로 만든다. 부연 설명하자면 그림의 화면위의 색깔들은 색감과 함께 형상을 만듦으로서 물감 자체는 보이지 않게 되고 조성된 형상만을 보게되는 형상과도 같다. 따라서 홍승일의 선택된오브제들은 작품의 전체 구조에 맡겨지게 된다. 다른 용도로 제작되었고, 이미 사용되어진 나무의 파편들을 선택하여 오브제로 사용한다는 점은 소재에 있어서 암시적인 성격을 갖게 하고 시간의 변화에 따른 오브제의 역사를 반영한다 하겠다. 그가 선택하는 나무토막, 공사장의 판넬들, 그리고 철 제품, 하나 하나가 지시하는 이미지들은 시각적으로 정의되는 방식에서 볼 때 현상보다는 의미에 대해 더 의존적이나, 하나의 작품은 낡은 나무토막이나 철창과 같은 물체들의 용도와 이미지들을 통합해서 이루어지면서, 작품을 이해하는 우리의 눈을 통해 지시되는 경험적 사실과 그것들에 대한 의미론적 규칙을 보게되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상황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또다시 서로 조합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실제성과 어울리지않는 대조에 의해 현실을 폭로한다.

 우리가 요즈음 흔히 접하게 되는 설치 작품에서의 오브제의 사용에서는 일상에 대한 은유적일 수 밖에 없다. 즉 지시체 자체가 갖는 실제성에서 현실적 상황의 반영을 시도하지만 조합이라는 과정과 전시라는 과정 속에 오브제의 성격이 지나치게 노출되면서 전체의 통합적 의미를 약화시킨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여러 이미지의 상충으로 인하여 장식적 효과만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홍승일의 오브제는 원래의 제작된 용도와 관련지어지며 그 용도를 해체시키면서 오브제의 사실성과 형식상의 해석 轉移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홍승일의 오브제들은 용도의 해체라는 과정이 이미 선택되기 전에 이루어져 있었으며, 오히려 선택되지 않았을 때 재료로서의 가치은 無用에 가까운 상태이었다. 그것을 다시 회복 시키는 작업은 관습적으로 인식되는 의미들을 독립시키고, 작가 개인의 체험과 연관 시키면서 습관적이며 평상적인 이해를 특수한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홍승일의 작품의 구조에서 느껴지는 암시는 일상적이지 않고 무언가 색다른 형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구조는 닫혀 있는 것과 열려 있는 장소를 형성하며 안과 밖을 만든다. 이는 오브제들의 조합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공간과의 연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 과정은 선택적이든 필연적이든 간에 실제 공간과의 융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하고 서로 상반된 해석의 여지가 남게 된다. 특히 판넬의 사용에서의 공간 구성을 볼 때 재료의 평평함과 중복성은 공간에서 확장의 가능성에 의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홍승일의 오브제는 역사적 산물로서의 폐허를 상징한다. 그리고 사실적이든 허구적이든 이야기 될 수 있는 암시적인 것들을 제시하고자 하며, 특히 개인적 이야기를 첨가함으로써 허구와 사실적 역사간의 끝없는, 그리고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브제의 결합은 여러가지 이야기, 많은 행위가 담겨져 있으며, 진정한 모험이나 도덕적 가치, 또는 의미까지 연상시키고 있다. 그의 오브제들은 외면적으로는 주목할만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며, 감상자 개인적 경험에의한 명확한 주의도 끌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재료들은 폐허에서 선택된 것들이고, 과거에 대해 예민한 향수적인 사람들의 감수성만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 첨가된 다른 요소들은 작가 개인적 경험을 더욱 강조한다. 철창이나 새장 같은 제작된 오브제를 통해 자신에게는 본질적으로 허구로 남아 있게 되는 다중적 유추 방법을 제시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감수성을 개인적인 어법을 사용하여 재결합하면서 단순히 개인적인 감성을 넘어 보편성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향수적인 상징성의 회복은 의도적이지 않지만 작품의 내용과 의미의 전통적 특징들을 드러내면서 진부한 현상을 역설적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이는 시각적 사실과 상징적 믿음에 대한 총체론적 해석의 시도라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술 작품 자체를 반영하는 한계와 극복이라는 과정은 작품과 실체, 자의식과 현상의 동일성이 이루는 불균형을 해소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홍승일은 가능한 한 서술적 어법이라든가 부분적인 전통적 의식을 반영하면서, 심층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오브제의 문제를 실제적인 세계와 이상화시킬 수 있는 허구와의 관련을 통해 암시하는 것이다.

 그는 안산의 간척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갯벌은 이미 황폐해져 소금기가 땅위에 오르면서 또 다시 죽어 들어가는 땅을 보았다고 한다. 수 천년 동안 누적된 소금기가 물 빠진 바다의 황폐한 영혼처럼 다시 솟아오른다. 이러한 경험은 철저히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를 엿보게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선택한 오브제는 우리에게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등장하는 낡고 썩어가는 나무토막에서, 그리고 건축물의 골조를 짓기위한 판넬의 형상에서 이미 잠재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가 수 없이 반복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윤회를 기대하는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고, 버려진 폐허 위에 다시 솟아 올라올 아파트 집단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의 의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현실을 고발하는 것도 아니다.

 홍승일 작품의 강한 상징성은 실재를 이상화하는 상응된 능력과 함께, 한편 의문의 대상이 되는 것이나, 홍승일의 작품은 일종의 환유법으로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일부를 제시하며 그것은 인접한 전체를 암시한다. 그것은 현재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개념적 상대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명료하지 않지만 객관성의 일부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그의 작품은 과거의 유물 속에서 현재를 재생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오브제들을 기호화시키고, 그 기호 조합에 의해서 작용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호들은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있게 됨으로써 오브제와 그것이 위치하는 장소는 항상 긴장된 거리를 갖게 되고, 현실과 대립적 관계로서의 오브제들은 현재의 장소와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를 빌릴 뿐이다. 따라서 홍승일의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 간의 관계가 상충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는 분열과 구분의 관계로 유지된다. 그렇지만 미래에 대한 상징성은 기호의 조합에서 기호의 재현성을 깨트리고 탄생한다.

1996년 4회 개인전 (미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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