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ONG_critique

 




홍승일의 힘 / 글 김용범 (시인 .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Ⅰ홍승일을 뒤돌아 보기

미술평론가나 미술행정가가 아닌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한 작가의 작품 활동을 수 십년간 지켜 보노라면 뜻하지 않게 나름대로의 식견이 생기게 된다. 자의적 해석이라야 옳을지 아니면 서당개 삼년과 같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현재 미술의 평단의 이론과 사조 또는 담론과 전혀 상관없이 한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일관성이라던지 아니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또는 표현 기법과 발상의 전환 같은 행보가 포착되고 이것으로 의미하고자 하는 그의 내면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한국현대미술의 최전선전〉(1987년 관훈미술관 )을 전후한 <메타-복스(Meta-Vox>그룹 전시.. 당시 개념조차 생소한 오브제 작업을 예술적 객기로 충만한 오상길, 안원찬, 하민수 김찬동등과 함께 실험하는 일련의 기획전들에서 였다. 홍승일은 이 운동에 앞장 선 선배 김찬동이나 오상길의 뒤편에서 묵묵하게 있으면서 그러나 틈틈이 자기의 생각을 송곳처럼 드러냈다. <메타-복스(Meta-Vox>그룹의 창립멤버였던 김찬동은 <문화예술 2003년 10월호>의 ‘통념적 사유와 절대화된 가치로부터의 끝없는 탈주(脫走)’ 란 글에서 당시 그들 스스로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0년대 중반은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다원화의 조짐이 시작된 시기로 평가된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단순히 정치적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고,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자유라는 또 하나의 명제를 내포한 것이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다양한 욕구들이 분출되고 그간의 획일적인 거대담론들이 의심을 받기 시작한 시기이다. 미술의 경우도 오랜 거대담론 역할을 담당했던 모더니즘의 사유에 대해 사회적 리얼리즘 진영은 물론, 모더니즘의 사유에 대해 사회적 리얼리즘 진영은 물론, 모더니즘 내부로부터도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획일적 형식과 자기 규정적 속성을 가진 종래의 미술이 해체되기 시작하며, 다원적 가치와 작은 담론들을 중심으로 한 군소 그룹이나 개인의 활동들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기이다.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 그룹 중 하나가 메타-복스(Meta-Vox)이다. 그룹의 명칭에서 시사하는 바처럼, 메타-복스는 종래의 미술언어를 넘어서며 다양한 목소리(vox)를 중시하는 태도를 표방하였다. 그룹의 작가들은 기존의 관습적 언어 대신 규정 불가능한 영역을 향해 다양한 실험적 작업을 펼쳤다. 이들은 철저히 모더니즘 미학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의 과감한 일탈을 꾀하였다. 메타-복스는 1985년 필자를 비롯하여 오상길, 안원찬, 홍승일, 하민수 등 5인(나중에 故 장기범 합류)에 의해 결성되어 1989년 해체전을 가질 때까지 국내 중요 기획전과 초대전에 참여하면서, 그룹전과 그룹 차원의 기획전들을 통해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표현성이 강한 설치와 입체 작업을 펼쳤다.

그들이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며 이루어낸 성과는 비록 한국 현대 미술사적 패러다임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국내 화단에 설치미술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일상적이며 보편적이 용어로 정착시켰다

여하튼 당시 홍승일은 사물을 왜곡하거나 축소하거나 재해석하지 않고 물성(物性) 그 자체를 자신의 작업에 도입했다. 그는 집요하게 건축용 판넬이란 오브제(objet) 그것도 공사 현장에서 쓰다버린 합판 판넬에 유독 집착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만들어내는 공간의 축조와 배치 그로하여 재구성된 디멘죤 (Dimension)에 천착하고 있었다. (소위 평면에서 입체로의 전환과 그것으로 확보된 새로운 차원 즉 새롭게 확보된 디멘죤에 대한 집착이었고 본다)

그는 작품설치가 시작되는 날이면 선배들의 따가운 눈총을 꿋꿋이 견디며 작품의 설치 장소 확보에 대한 유별난 욕심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오브제와 오브제의 결합으로 축조하는 설치의 형상보다는 벽을 막기. 바닥에 깔기. 공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기 같은 생뚱맞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개인전까지 연장되었다 . 어느 해인가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는 전시장 전체를 낡아서 너덜 너덜해진 판넬을 공사장에서 가지고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축조물을 쌓고 부스러진 목재조각들을 바닥에 널어 놓았다. 물론 본인은 치밀한 계산에 의해 배치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영락없는 폐허 만들기였고 더욱이 전시도록도 시멘트 포대종이였다

그런데 그 작업의 발상은 참으로 엉뚱한 곳에서 촉발된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개인전이 있기 전 나는 홍승일과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북한과 소련 중국의 3국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훈춘의 방천이란 곳이었다. 지금이야 관광객들이 아무 때나 갈수 있는 관광지지만 당시 만해도 훈춘이란 곳은 외국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접근 금지 구역이었고 가 봐야 황량한 겨울 두만강의 하구 바람에 모래가 쌓이는 사구(砂丘) 뿐인 곳이었다.

그런데 문득 차를 세워달라는 홍승일의 요청에 모두들 의아했는데 차가 서자 그는 토탄(土炭)을 캐는 움막을 향해 달려갔다. 석탄을 캔다면 강원도의 태백이나 사북처럼 갱도를 파고 들어가 캐내는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들에게 토탄 채취장은 무척 낯선 풍경이었다. 움막같은 골격에 도르래를 달고 사람이 삽질을 하면서 직각으로 파들어 가 캐내는 석탄 채취. 여행은 그렇게 끝났고 동행한 모두의 기억에서 그곳의 형상은 지워졌다. 그런데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전시장에는 오래 전 겨울 끝에서 되살아 난 조형물이 홀연히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아니면 창의적 발상법이란 강의 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아니 조자룡 헌 창 쓰듯 내가 휘두르던 이론의 실체가 시나 소설이 아니라 홍승일의 설치작업으로 드러나 있는 것 아닌가.

상상은 과거에 보고 듣고 겪었던 사물의 이미지를 마음속에서 다시 생각해 내는 일인데 일종의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은 감각적 모상(模像) 또는 인상이다, 이것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미국의 심리학자인 제임즈(William James, 1842~1910)는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이라고 하여, 생산적 상상(productive imagnation)과 구별하고 있다.첫째,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단지 회상 복제하는 단계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기억’이라고 일컫는다.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이라 한다. 둘째,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결합하는 단계, 곧 다르거나 관계가 먼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거기서 어떤 유사점을 찾아 결합하는 단계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관념 연상이 바로 이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이를 연합적 상상(associative imagination)이라 한다. 셋째, 이와 같이 이미지들을 결합함으로써 그 모습과 의미가 바뀌어 새로운 이미지들의 통일체를 만들어 내는 제3의 단계가 있다. 이러한 제3의 단계를 우리는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이라 한다.

지금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인용하는 글이다. 이 이론의 출처는 다름 아니라 문덕수 .<오늘의 시작법> (서울 시문학사 1987) 122쪽의 내용. 문덕수 선생이 평생을 홍익대학 교수 계셨으니 홍승일이 국문과에 찾아가 수강신청을 하고 그 수업을 들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단언하지만 화가 홍승일이 절대 그럴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지와 이미지들을 결합함. 그리고 그 모습과 의미가 바꾸어 새로운 이미지들의 통일체를 만들어 냄. 나는 그날 이후 홍승일의 창조적 상상력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Ⅱ 홍승일을 통해 나를 뒤돌아 보기

내가 홍승일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예고를 찾아간 것은 2011년 8월 마지막 날이 었다. 10년 정도 침묵을 지키던 홍승일이 <빛과 물의 흔적>이라는 테마로 작업을 개시한 이래 네 번째 연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 홍승일은 인사동과 역삼동 서초동의 화랑을 돌며 전시를 강행하고 있다. 이런 행보가 가능한 것은 그의 작품이 벽에 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평면작업을 선택함으로서 전통적인 화랑들에서의 전시가 가능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가 일관해왔던 설치 작업에서의 일탈 또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한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집착하던 오브제로서 판넬 작업의 종언(終焉)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그의 연작 전시 중 2009년 9월 4일부터 열린 TJH 갤러리의 전시회를 제외하고 두 번의 전시를 보았다. 그가 발견한 작업은 시멘트 벽이었다. 나는 그 벽을 보는 순간 어릴 때 기억에 꽂히고 말았다. 봉천 7동이나 난곡. 아니면 금호동이나 옥수동의 브로크 담벼락에 거친 흙손으로 밀어 바른 벽들과 비온 뒤 아직 마르지 않은 갈라진 틈새의 물기와 그 자욱들은 60년대와 70년대 초반 내 기억의 편린들을 되살려내 아득하게 만들어 주었다.그런데 나는 그의 전시회에 가서 <빛과 물의 흔적>을 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영희의 닥종이 인형<엄마가 어렷을 적에>전시회의 그림 두 컷이 불쑥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한남 초등학교 6학년 4반이거나 동북중학교 3학년 1반 김용범을 발견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홍승일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마침 화랑에 들린 오상길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는 재빨리 전시장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서초동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그 전시도록에는 친절하게도 홍승일 최근 작업 정보가 소상하게 실려 있었다

"홍승일이 재현한 것은 실제 벽이 아니라 벽을 모방한, 의사벽이다. 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회화와 조각적 공정으로 마감된 표면에 사진이미지가 프린트되어 실재 벽처럼 느껴지고 부감될 뿐이다. 환영적 요소가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동시에 촉각적 벽이기도 하다. 거칠고 굴곡심한 시멘트 벽면을 더듬고 싶은 충동을 눈에 달아주고 있다. 작가는 화면(판넬)에 핸디코트를 곱게 발라 시멘트벽과 같은 느낌, 질감을 만든다. 붓질이 아니라 흙손으로 흡사 실제 시멘트를 바르듯이 표면에 납작하게 도포 한 후 사진을 얹혀놓았다. 어떤 것은 부분적으로 요철효과를 주어 부조적 으로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사진을 프린트 한 것도 있다. 미리 사진 촬영해서 선택한 벽 이미지의 표면에 맞게 바탕 면(화면)을 조각적으로 연출하고 그 위에 사진을 전사해 얹혀놓기에 그 환영감이 더 강도 있게 다가온다. 가는 선들이 지나가고 갈라진 틈들이 보이는 벽 위로는 물이 스며들어 퍼져있다. 작가는 그렇게 연출한 벽 위로 물, 습기를 개입시켰다. 물감으로 섬세하게 그려 넣은 부분이다. 순간 냉랭하고 건조한 시멘트는 눅눅해지면서 물기를 포용하고 있다. 작가는 그렇게 삭막한 불임의 단호한 벽안으로 들어가고 상처(깨지고 갈라진 선)를 봉합하고 있다. 그것은 다분히 치유적인 차원이자 시멘트로 대변되는 자신의 삶의 환경과 주변을 인간적인 정서로 흡입해내려는 모종의 마음을 감지시킨다." <홍승일 -시멘트 벽에 대한 향수 /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여름의 끝자락에 서울예고를 찾은 나는< 빛과 물의 흔적>이란 이름의 연작들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아니 만드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전시준비를 하면서 작업 중인 작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멈추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만난 두 편의 작품은 한원미술관 전시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무 그림자가 비친 시멘트 담벼락> 이었다. <빛과 물의 흔적>이 아니라 그림자가 투사된 작품들 . 그의 작품은 평면으로 돌아와 벽에 결렸지만 또 다시 오래전부터 일관해온 디멘죤 (Dimension)에 집착하고 있는 그의 관점이 또 다른 형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평면의 벽과 나무그림자 . 그렇다면 그림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자리쯤 그림자를 벽에 떨군 나무가 있다는 말이다. 3Dimension. 흔히 말하는 3D가 그것이었다. 평면에서 홍승일이 찾아 낸 디멘죤에 나는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문화적 구심력과 문화적 원심력을 생각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원심력이란 물체가 원운동을 하고 있을 때 회전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힘을 말한다. 그것을 예술에 접맥시켜보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화취향과 양식에 순화 적응하려는 힘. 즉 실험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힘이 있다 바로 구심력인데 문화에 적용하면 문화적 구심력(centripetal force )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구심력과 원심력은 원운동을 하는 물체나 물체 위의 질점(質點)에 작용하는 힘과, 원의 중심으로 나아가려는 힘과 상응하며 서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이 두 힘을 물리학의 이론대로 해석하면 ‘회전하는 계에서 관찰되는 원심력’은, ‘가상적인 힘이고, 실존하는 구심력’과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지만, 구심력과 작용 반작용 관계는 아니다. 회전하는 계에서 관찰했을 때는 원심력만 관찰될 뿐, 구심력은 관찰되지 않는다. 관성좌표계에서 관찰했을 때는 구심력과 이에 대한 반작용만 존재할 뿐, 원심력은 관찰되지 않는다. 즉, 좌표계에 따라 구심력과 원심력 중 하나만 관찰된다. 참 어렵게 말했지만 긴 끈에 돌멩이를 달아 빙빙 돌려 보면 손쉽게 설명이 가는 일이다.

이를 문화적으로 다시 해석한다면 사회문화적 변동에 적응하는 문화적 원심력이 두드러 지면 수구적으로 보존하려는 구심력이 작용하게 되는 것인데 이 두 힘은 적대적 관계, 상호 비타협 관계가 아니라 공존적 성격이며 상보적(相補的)관계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가 10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20년 전 작품에서 오브제와 오브제의 결합으로 축조하는 설치의 형상보다는 벽을 막기. 바닥에 깔기. 공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기 같은 작업으로 확보하고자 있던 디멘죤을 나무 그림자 하나로 처리함으로서 또 다른 의미의 공간을 확보한 것이었다.

Ⅲ 홍승일의 작품을 통해 앞을 내다보기

인사동 전시가 끝나고 아무 연락도 없이 집으로 묵직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홍승일의 작품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이거 그냥 받아 두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 보상을 해야 하는데 과연 얼마를 보내야 할 것인지 참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본인은 돌아가신 부친의 묘비명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사례라고 하지만 그게 예의가 아니었다 . 설치 작업을 할 때면 전시가 있으면 도록이나 하나 챙기고 나서 덕담이나 건네고 역시 기대한 대로야 하면서 홀연히 사라지면 그뿐인데 이젠 벽에 걸 수 있는(그전엔 작품을 준다해도 그걸 가지고 갈 수 없는, 본인 역시 누구에게 줄 수도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작품 아닌가 장장 이십 몇 년 만에 홍승일의 작품을 수장할 기회가 온 것인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한원미술관 전시 마지막 날 큰마음을 먹고 금일봉을 싸들고 가서 작품 하나를 들고 왔다. 나는 <빛과 물의 흔적> 연작 중 중 두 개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부터 나의 관심은 영 딴데로 가 있다.

그 이유는 내 전공 때문이다. 최근 나는 미술이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논문에 몰두 하고 있는데 정민섭, 한혜숙, 박선희「CVM을 이용한 근대문화유산의 가치평가에 관한 연구,『호텔경영학연구』제17집한국호텔외식경영학회, 2008, pp.177~178란 논문이 그것이다 그 글에서 추려낸 용어와 개념의 적용문제를 예술 작품의 재화가치에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간략하게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데 거실에 놓여진 홍승일의 작품을 바라보며 늘 생각하는 화두가 되어 버렸다

가치의 구분

사례

사용가치

(use value)

직접 사용 가치

(direct use value)

소비재와 비소비재 사용을 포함한 자연 자원의

현재 사용가치

간접사용가치

(indirect use value)

자연자원의 의도된 미래사용의 가치

비사용 가치

(non-use value)

선택가치

(option value)

다른 개인들이 원래 그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서 오는 효용의 가치

존재가치

(existence value)

자원의 다른 사용이나 비사용 가치 외 그 자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데서 오는 가치

유산가치

(bequest value)

미래세대가 그 자원을 사용할 수 있음을 아는데서

오는 가치

총 경제적 가치= 실제사용가치 +선택가치 + 비사용 가치

사용가치(use valu)란 말이 자원의 현재나 미래를 사용하여 얻어지는 가치의 개념이라면 비사용가치란 보전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잠재이용자들이 받는 편익 또는 효용을 말하며, 지식의 축적 또는 심리적 자산을 뜻한다. 비사용 가치는 실제로 개인이 자원을 사용하는 것과 연관되지 않은 채 얻을 수 있는 가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일종의 ‘문화적’ 또는 ‘유산가치’ 같은 것으로서 직접 구체적으로 사용하는 행위 없이 특정 자원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얻는 만족을 말하며 수동적 사용가치라고도 불리는데, 직, 간접적 이용과 관련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로부터 발생하는 편익을 말한다. 선택 가치(option value) 현재는 문화자원을 이용해 본 경험은 없으나 가까운 미래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미래의 선택을 위해 보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의미하며 존재 가치(existence value) 그 자원을 현재 이용하지 않고 미래에도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만 존재한다는 인식을 통해서 특정자원의 보존에 동의하고 있는 것 그리고 유산가치(bequest value), 즉 현재 이용하지 않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도 이용할 가능성은 없으나, 후손들이 즐길 수 있도록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치를 말한다.

말하자면 내가 소장한 홍승일의 작품 두 편의 총 경제 적 가치는 얼마 일까? 혹시 존재 가치(existence value) 그 자원을 현재 이용하지 않고 미래에도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만 존재한다는 인식을 통해서 특정자원의 보존에 동의하고 있는 것 아닐까. 혹시 이번 전시를 계기로 홍승일이 세계의 유명한 미술작품 수집가들이 눈독을 드리고 있다가 한 점에 대략 10억 쯤 경매에서 낙찰되는 이변이 벌어지진 않을까 . 그렇게 된다면 재빨리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하나를 팔아서 .............. 그러다가 안되면 가까운 미래에도 이용할 가능성은 없으나, 후손들이 즐길 수 있도록 ............................. 여하튼 홍승일의 작품들은 내게 연금복권처럼 즐거운 희망을 준다.

2011년 8회 개인전 (토포하우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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